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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일지

용호비결

용호비결... 백두산족 수련법

출처 : 홍익학당 글

현빈일규(玄牝一竅)
玄(현) 검다, 오묘하다, 깊다, 하늘
牝(빈) 암컷, 골짜기, 계곡
竅(규) 엿보다. -> 여기서는 구멍을 일컫는다.

수단(修丹)의 도는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지만, 이제 그에 관한 책이 소나 말에 가득 실어도 모자라고, 집 한 채를 다 채울 정도로 많은 데다가, 또한 그를 표현한 말이 명확하지 않아서 황홀하니 참뜻을 알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배우는 이가 처음 손댈 방법을 알지 못하여 장생을 얻으려다가 도리어 요절하는 사람이 많았다.


『참동계』라는 한 권의 책은 실로 단학(丹學)의 시조라고 할 만한 책이지만 생각건대 이 또한 천지(天地)의 이치를 참고하여 괘와 효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어서 처음 배우는 사람은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헤아리려는 것과 같아 능히 짐작하기 어려운 바가 있다. 이제 난해한 것은 다 빼고 입문에 간절하고도 쉬운 것을 몇 개의 장으로 나누어 기술하고자 한다. 만약 능히 깨달을 수 있다면 한마디 말로도 족할 것이다. 대개 처음의 시작은 폐기(閉氣) 뿐이다.


(이것이 이른바 한마디의 비결이요, 지극히 간단하고도 쉬운 도이다. 옛사람들은 누구나 이것을 숨겨서, 내놓으려 하지 않았고, 알기 쉬운 말로 하려고도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처음 시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기식(氣息) 가운데서 단(丹)을 수련해야 함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금석(金石)에서 단(丹)을 구하였기 때문에 장생을 얻으려 하다가 도리어 요절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


이제 폐기(閉氣)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마음을 고요히 하고 단정히 앉아서 (이른바 불가의 금강좌이다.) 눈썹을 발처럼 드리워 내려다보되 눈은 콧등을 대하고 코는 배꼽 언저리를 대하며 (단학 공부의 정신은 온전히 이에 있는 것이다. 이때 등뼈는 마땅히 수레바퀴 모양으로 둥글게 하라.) 들이쉬는 숨은 면면히 끊어지지 않게 하고 내쉬는 숨은 조금씩 아주 미미하게 하여 항상 신(神)과 기(氣)로 하여금 배꼽 아래 한치 세푼의 자리에 있는 단전(丹田)에 서로 머물게 하라.


(숨을 꾹 참고 기(氣)를 내보내지 않아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다. 다만 뜻을 가하여 기(氣)를 아래로 보내되 대략 소변을 볼 때와 같이 하면 된다. 이른바 “내쉬는 숨은 손풍(巽風)에 힘입는다” 하는 것이다. 진실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머리를 자연스럽게 숙여 아래를 보되 눈은 콧등을 보고 코는 배꼽 언저리를 대하게 하면 기는 아래로 내려갈 수 밖에 없게 된다.


폐기의 초기에는 가슴이 번거롭게 꽉 차는 듯하거나 혹은 뱃속에서 지르는 듯 아프기도 하고 우레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 내려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제대로 되어 가고 있는 징조이다. 상부(上部)의 풍사(風邪)는 정기(正氣)의 핍박을 받게 되면 공동처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 보내는 길을 얻은 연후에야 기(氣)는 스스로 평안해지고 병도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공부의 첫 길이요 또한 편향증험이라고도 한다. 가슴앓이나 배앓이로 늘 고생하는 사람이 더욱 마음을 다하여 수련한다면 그 효과가 매우 신묘할 것이다.)


항상 생각하고 수련함으로서 공부가 차츰 익숙하게 되어 이른바 현빈일규(玄牝一竅)를 얻게 되면 백 가지 구멍(竅)과도 모두 통하게 된다. (규竅 가운데에서 태胎가 숨을 쉬게 되니, 이 한 구멍을 얻는 것이 곧 선도仙道를 닦는다는 것이다.)


일규(一竅)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태식(胎息)을 하고, 이로 말미암아 나아가 주천화후(周天火候)도 하고 결태(結胎)도 되는 것이니 일규(一竅)를 얻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없다. 어떤 사람은 방문의 잔재주를 부리는 것이라 하여 행하려 들지 않으니 애석한 일이다. 변화하여 날고 솟구치는 술법은 감히 내가 말 할 바가 못 되지만 양신(養神)하는 데 있어서는 천 가지 방문이나 백 가지 약이 있다 하더라도 이에 비할 수는 없는 것이라, 이 공부를 한 달만 행하여 백 가지 질병이 모두 사라질 것이니 어찌 마음을 다하여 행하지 않겠는가 ?


대체로 풍사(風邪)의 우환은 혈맥 속으로 숨어들어 드러나지 않게 몸속을 돌아다니는데도, 이것이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흉기가 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그것이 오래 되어 경맥을 따라 깊이 고황에 들게 되는데 그런 연후에는 의사를 찾아 약을 써도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의가醫家는 병이 난 후에 병을 다스리지만 도가道家는 병이 나기 전에 미리 병을 다스린다.)


정기(正氣)와 풍사(風邪)는 물과 불 같아서 서로 어울리지 못하므로 정기(正氣)가 머물러 있으면 풍사(風邪)는 저절로 달아나서 백 가지 맥이 자연스럽게 유통되고 삼궁(三宮)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오르내리게 될 것이니 질병이 무슨 까닭에 생기겠는가 ? 좀더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수련을 한다면 반드시 수명을 연장하여 죽을 기한을 물리치게 되겠지만 그 찌꺼기만 얻더라도 평안하게 천명을 마칠 수 있으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니, 내가 항상 이 책을 여러 군자들에게 전해주는 것 또한 서로 사랑하는 도인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나의 외람됨을 용서해 준다면 매우 다행한 일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옛사람이 말하기를 순리로 하면 사람이 되고 역리로 하면 신선(神仙)이 된다고 하니,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넷을 낳고, 넷이 여덟을 낳고, 그렇게 육십사에까지 이르게 되어 온갖 일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은 인도(人道)이며 (순리로 밀고 가는 공부) 다리를 포개어 단정히 앉아서 눈썹을 드리우며 입은 다물고 만 가지 어지럽고 번거로운 일을 수습하여 아무것도 없는 태극의 경지로 돌아가는 것은 선도이다. (역리로 밀고 가는 공부)


『참동계』에 소위 뜻을 버리고 허무(虛無)로 돌아가서 항상 무념(無念)의 상태가 되고 (무無라는 것은 태극太極의 본체이다.) 스스로 증험하여 차츰 밀고 나아감에 마음이 하나되어 종횡으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선도 수련의 첫째 뜻이다. 다만 수선(修仙)하려는 사람은 그 뜻을 일찍 세우는 것이 귀한 것이다. 몸의 원기가 쇠약해진 후에는 비록 몇 배의 공을 들인다 해도 상선의 반열에 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폐기(閉氣)


(복기(伏氣) 또는 누기(累氣)라고도 한다. <황정경>에 "신선도사라 하여 달리 신이한 술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과 기를 쌓아가는 것을 참된 기로 하는 것이다." 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이른 말이다.)


폐기(閉氣)라는 것은 눈을 깃발로 삼아 기의 오르내림과 전후좌우를 뜻하는 바대로 하지 않음이 없다. (기를 오르게 하려면 위를 보고 기를 내려가게 하려면 아래를 본다.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 눈을 뜬 채 위를 보면 좌측의 기가 돌아서 올라오고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을 뜬 채 위를 보면 우측 기가 돌아서 올라온다. 기를 내리는 데는 몸 앞쪽의 임맥을 쓰고 기를 위로 올라가게 하려면 몸의 뒤쪽에 있는 독맥을 사용하는 것이다. 신(神)이 가면 기(氣)도 가고 신이 머물면 기도 머무는 것이니, 신이 가는 곳이면 기가 가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마치 군중에서 군을 지휘할 때 깃발을 사용하여 군을 움직이는 것과 같이 눈으로서 명령하지 않는 것이 없다. 또한 위를 보고자 할 때는 눈을 뜨지 않고 다만 눈동자를 굴려 위를 보아도 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대개가 몸의 위족은 기가 성하고 아래쪽은 기가 허해서 아플 때는 상기(上氣)가 되어 아래 위가 서로 교류하지 못하므로, 늘 기(氣)가 아래로 내려가 중궁(中宮: 단전)에 있도록 힘써서 비장과 위장이 화창하고 혈맥이 잘 순환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은 다만 세상의 일반 사람들만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丹)을 수련하여 지키는 요체도 역시 이와 같이 몸의 중궁(中宮)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다.) 능히 혈맥으로 하여금 두루 돌게 하여 임맥과 독맥이 모두 통하게 되면 수명을 연장하고 죽음의 기한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단(丹)을 수련하는 길은 반드시 폐기(閉氣)하는 것으로 시작의 첫걸음으로 하여, 다리를 포개고 손을 단정히 하며 얼굴을 펴서 온화한 빛이 돌게 하고, 눈은 발을 드리운 듯 아래를 보아, 반드시 신(神)과 기(氣)가 배꼽 아래 단전(丹田) 가운데 머물게 하면 몸의 위쪽에 있는 풍사가 마치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내리듯 흘러내려서 먼저 가슴에서 배로 내려가게 된다. (처음에는 배에 가득 차고 다음에는 배가 아프게 된다.)


이 길을 얻은 연후에는 몸이 화평해지고 땀이 촉촉히 나면서 온몸의 모든 맥이 두루 돌게 되니, 곧 마음이 텅 빈 듯하여 눈앞에 백설이 펄펄 내리는 듯 느껴지고 내가 육신에 깃들어 있는지 육신이 내속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으며, 매우 고요하고 아득하여 황홀한 경지가 되어 자신은 이미 음과 양이 나누어지기 이전, 즉 태극이 갈리기 이전의 경지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참된 경계이며 진정한 정신 수련의 길이다. 이 밖의 것은 모두 삿된 말이요, 망령된 행동이다.


 

태식(胎息)


(『태식경』에 이르기를, 태(胎)는 복기(伏氣)하는 가운데 맺어지고, 기(氣)는 태(胎)가 있는 가운데에서 숨을 쉰다. 기운이 몸 안에 들면 살게 되고 신이 형체에서 떠나면 죽게 되는 것이니 오래 살고자 하면 신과 기운이 같이 머물게 하라. 신이 움직이면 기운도 같이 움직이고 신이 머무는 곳에는 기운도 머문다. 부지런히 행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길이다.)


폐기(閉氣)하는 요령이 점점 익숙해져서 신기(神氣)가 좀 안정된 후에는 차차 기(氣)를 배밑에 털이 난데까지 밀어 내려, 이 기식(氣息)이 어디에서부터 나왔는가를 세심하게 추구하면서 그 출입을 따라 한 호흡 한 호흡으로 하여금 항상 그 가운데 있게 하여 (이를 소위 현빈일규(玄牝一竅)라 하는데 수단(修丹)의 도는 이곳에 있을 뿐이다.) 입과 코 사이에서 나오지 않도록 하면 (그러나 항상 한 치의 남은 기운이 입과 코 사이에 있도록 한다.) 이는 소위 모태 안에 있을 때의 호흡이니 이른바 귀근복명하는 길이다.


(또한 말하기를 근본으로 되돌리고 근원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인데, 사람은 어머니의 태중(胎中)에 있을 때는 입이나 코로 호흡하지 아니하고 탯줄이 어머니의 임맥에 연결되어 통하고 임맥은 폐로 통하며 폐는 코로 통하여 어머니가 숨을 내쉬면 또한 태아도 내쉬고 어머니가 숨을 들이쉬면 또한 태아도 숨을 들이쉬다가, 세상에 태어나 탯줄이 끊어진 후부터는 입과 코를 통해 호흡하게 되어 몸의 영양을 잃고 진기(眞氣)가 녹아 없어지니, 이로부터 질병이 생기고 요절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귀복하는 법을 얻어서 정진을 그치지 않는다면 벽곡(辟穀)을 하고 등선(登仙)한다는 것이 모두 이 법에 있는 것이다. 옛사람의 시에 "집은 낡아도 고치기 쉽고, 약은 말라도 살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네. 다만 돌이켜 회복하는 법을 알기만 하면 금은보화를 산처럼 쌓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태식(胎息)이 능해진 후에야 이 기(氣)가 부드럽고도 온화해지고 안정이 되어 마침내 호흡이 없는 듯한 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경(經)에 말하기를 기(氣)가 안정되면 호흡이 없어진다 하였다. 옛적에 갈선옹이 매년 한더위에는 깊은 연못에 들어가 열흘 만에 나왔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폐기로써 태식을 한 까닭인가 한다.

   

주천화후(周天火候)


(화(火)에는 안과 밖, 느리고 빠름이 있다. 수련의 초기에는 기와 혈이 모두 허하므로 폐기를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아 화후(火候)가 일어나기 쉽지만 배꼽과 배 사이에 기(氣)가 한동안 흩어지지 아니하면 반드시 따뜻한 기운이 그 사이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기혈이 점점 실해지고 화기가 더뎌진다. 또한 화(火)에는 문무(文武), 진퇴(進退)의 법이 있으니 잘 살펴 수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천화후(周天火候)라는 것은 열기가 온 몸을 도는 것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신과 기가 서로 배꼽과 배 사이에 머물러 있을 때 의식을 두어 부는 것이 능해지면 (이 때에 문무(文武)화후와 근양(斤兩)법도가 있으며 또한 진퇴(進退)의 법이 있으니 아주 조심스럽게 살펴 가며 수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몸과 마음을 고요히 안정시킨 연후에 법대로 잘 진화하면 방광이 불같이 뜨거워지고 좌우의 두 신장이 끓는 물에 삶는 것같이 뜨거워서, 허리로부터 아래쪽이 평상시와는 달리 시원하게 느껴진다. 만약 화후를 가볍게 하지 못하면 곧 뜨거운 불기운이 온몸에 퍼져 도리어 몸에 화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따뜻한 기운이 미미한 상태에서 차츰 뚜렷해지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열기가 이르는 곳이 점점 환하게 열리면서 올라간다.) 마치 꽃봉오리가 점점 피어나는 것 같아서 소위 ‘빛나는 연못(華池)’에 연꽃이 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신수화지(神水華池: 신수가 화지에 들어감)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비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하고 아주 흔들림이 없는 고요한 경지를 돈독히 유지할 때에 쓰는 말이니 바로 이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태를 오래 간직하고 있으면 열기가 점차 왕성해져서 (이것이 소위 꽃봉오리는 점점 피어나고 감로는 점점 무르익어 간다고 하는 것이다. 이 때에 수기(水氣)가 위로 거슬러 올라와 달콤한 침이 입 안에 고여 예천(醴泉)이 되는 것이니 소위 옥장금액(玉漿金液)이라 하는 것이다.)

 

뱃속이 크게 열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것처럼 되면 삽시간에 열기가 온몸에 두루 퍼지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주천화후라 하는 것이다. 법도대로만 운화를 한다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배꼽 아래 한 치 세 푼의 자리가 곧 하단전(下丹田)인데 상단전(上丹田: 이환궁)과 더불어 소리가 울리듯 서로 응하면 이른바 옥로(玉爐: 단전의 다른 이름)의 불은 따뜻하고 정상 이환에 붉은 노을이 난다고 하는 것이다. 상하단전이 물을 대듯 어울려 끝이 없는 고리 모양으로 둥근 형상을 이룰 것이니 다만 이 단전의 불기운을 따뜻하게 길러 잃지 아니하면 (하루 사이에 자오묘유(子午卯酉)로 진화(進火)를 해야 하며 따뜻한 기(氣)로 하여금 한숨이라도 진화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항상 밤낮으로 하루같이 수련하여 열 달이 된 후에야 태(胎)가 완성되는 것이다.)


청명한 기가 니환궁 위에 결정(結晶)된다. 이것을 선가(仙家)에서는 현주(玄珠)라 하고 불가(佛家)에서는 사리(舍利)라는 것이다. 이것에는 필연적인 이치가 있다. 도를 이루느냐 못하느냐에 이르러서는 각자의 정성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며 다만 일찍 달성하는 것이 귀한 것이다.


문득 듣자 하니 이른바 불로 약을 고아 단(丹)으로써 도를 이룬다는 말은 신(神)으로서 기(氣)를 제어하고 기(氣)로써 신(神)을 형체에 머물게 하여 모름지기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술(術)은 알기 쉬우나 도(道)는 만나기조차 어렵고 비록 우연히 만났다 하더라도 전심 전력으로 행하지 아니하는 까닭에 천 명, 만 명이 배워도 끝내는 한두 사람의 성공자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정성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시(詩)에 이르기를 “정기(正氣)가 항상 배속에 가득하니, 한가히 지나는데 무엇이 해로울꼬, 초연하게 지낸들 거리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였다. 달마 선사도 태식법(胎息法)을 얻었으므로 능히 면벽(面壁)하고 관심(觀心)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황정경』에는 “사람들은 모두 오곡(五穀)의 정(精)으로 배를 불리나 나는 홀로 음양(陰陽)의 기운으로 배를 불리네!” 하였다. 이 두 시를 보면 벽곡(辟穀)은 오로지 태식(胎息)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진실로 능히 벽곡(辟穀)을 하여 홀로 음양(陰陽)의 기운을 포식할 수 있다면 땅의 문(地戶)은 닫히고 하늘의 문(天門)은 열릴 것이니 어찌 평지에서 신선(神仙)이 되어 올라가지 않겠는가.


 

위의 세 조목은 비록 각각 이름 붙기는 하였으나 오늘에 한 조목을 행하고 내일에 또 한 조목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공부는 폐기(閉氣)하는 중에 있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다만 공부에는 깊고 얕음이 있고, 등급에는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이니 비록 변화하여 하늘을 나는 술법을 할지라도 모두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며, 오직 배우는 이의 “정성(誠)”에 달려 있을 뿐이다